Garden Quartet - John Williams: Schindler's List
Sifei Wen, cello, J. Williams, Theme from "Schindler's List"
비디오 2개짜리 영화였다. 엄마 아부지 옆에서 보면서 울다 울다 지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볼때마다 울긴 한다. 영상만으로도 충분한데 배경음악까지 아이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게 아닐까..
바이올린 소리가 콕콕 찔러오며 아픔을주다 가슴을 찢어지게 만든다면 첼로 소리는 삽으로 퍽퍽 찔러서 뭉텅이로 들어내버리는 기분이다.. 이작펄만의 연주까지 더해지면 감당안될 것 같아 콰르텟연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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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시프가 자신이 아직도 스케일을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2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연주자들은 첼로를 연주할 때 취하는 각 동작들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뛰어난 기교 강한 체력과 힘 음악적 깊이를 갖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를 제어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몸을 경제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을 익혀야 한다. 연주에 있어서 비음악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측면, 가령 손가락의 속도라든지 활을 긋는 기법 혹은 포지션을 이동할 때 손의 음직임 등은 음악적 표현과는 별개로 익혀야 한다. 만약 연주자가 악기를 편안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표현력의 가능성은 크게 제한 받는다. 악기에 대한 불편함이 클수록 그 연주자는 기초연습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할수 있다. 내가 연습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아직도 스케일을 연습한다). 내가 이러한 기교적인 곡들은 즐겁게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거난 나는 연습한다. 악기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소절을 연습곡에서 발견하곤 하는데. 푀이야르와 코스만의 작품에서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연주자들이 연습곡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사실 많은 음악가들이 연습곡은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연주곡을 통해 기교를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동의한다. 단. 당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연습곡은 특정한 구조의 축소판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것은 협주곡과 달리 감정의 흔들림 없이 완벽한 통제 하에서 연주되어야 한다. 당신이 이러한 태도를 협주곡에 적용시켜 연습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낸다면 당신이 이러한 태도를 협주곡에 적용시켜 연습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낸다면. 당신은 연습곡을 연주할 때와 같이 예민하게 그 소절을 연습할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이러한 접근법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이 외칠 것이다. “그러면 협주곡이 연습곡처럼 들릴 것이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누구나 무엇이 문제인지 말할줄은 알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습곡을 가까이 한다.
다른 음악가들을 생각해 보자, 모든 성악가들은 당연히 하루를 기초발성연습(이를테면 아르페지오 스케일 음색과 인토네이션에 대한)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이 과정을 여러조성으로 바꿔가며 반복한다. 목소리가 적절히 뒷받침해주고 있는가를 확인하며 말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지구력과 호흡조절을 위해 긴 음표를 유지하는 연습을 한다. 반면 우리 현악기 연주자들은 이런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만의 음색을 찾아야 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나는 비브라토를 넣어서 혹은 비브라토 없이 개방현으로부터 연습을 시작할것을 권한다. 이 때 연주의 신체적 측면에 집중한다.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내 몸은 편안한가? 나는 빠르고 느린 속도로 활을 제어할 수 있는가? 비브라토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나는 음표를 평평하게(비브라토 없이) 지속시키다가 단순히 연습삼아 비브라토를 가미해본다.
만약 건조한 소리가 나면 나는 그것을 그만둔다. 비록 이러한 동작이 예술적인 행위와는 동떨어져 있다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 음표에 애정을 가져야 하며 스스로 편안함을 느껴야 하고 악기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또한 항상 편안함을 느껴야 하고 악기 그자체를 즐겨야 한다. 또한 항상 편안한 느낌을 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당신이 만들어낸 소리에 중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음악이 점점 연주하기 어려워지게 되면서 당신은 제어능력을 잃을 수 있다. 자신의 몸의 움직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록 예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쉬워지게 된다.
내가 마스터클래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학생에게 먼저 조용하고 작은 것, 즉 보통빠르기로 단순한 음표를 나열한 것을 연주하게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메조포르테나 포르테로 소리를 크게 만든다. 꽉 차지만 지나치게 크지 않은 소리로 어쩌면 협주곡의 일부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급격한 포지션 이동이 포함된 소절일 수도 있다. 가끔씩은 셰프치크나 푀이야르의 연습곡을 주문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초로 돌아가기 위해 간단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기초과정에서 연주자세를 빼놓을 수 없다. 악기를 가지고 앉았을 때는 상체를 첼로를 향해 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여러시간동안 앉아있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내목을 조절해 본다. 목이 첼로를 누르면 안된다.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엉덩이의 긴장이 풀려있어야 상체가 팔에 무게를 싣도록 도울 수 있다. 마찬가지고 어깨를 들어올리는 일(우리 모두가 저지르는실수)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며 손가락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것은 양팔에 모두 해당한다.
힘에 관해서는 (첼리스트는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이는 타고난 운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훈련을 해야한다. 힘으로 소리를 만도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강한소리를 내야 하지만 체중과 중력을 사용해서 그렇게 해야한다. 한편 우리는 여분의 체력을 갖기 위해 더 많은 근육을 발달시킬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협주곡 하나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습실에서 전곡을 세 번 정도는 이어서 연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무대에서 연주할 작품보다 더 어려운 패시지를 정복해야 한다. 그래서 드보르작 협주곡을 더 쉽게 연주하기 위해 연습곡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요구되는 정도보다 더 많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필요로 하는 기교보다 더 많은 기교를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예술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감성을 훈련하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연주자들 가운데는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음악적 감각 또한 기교와 마찬가지고 잘 주비해서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작곡가에 대한 지식이 연주방식과관력해 맺는다고 생각한다. 베토멘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당시에 어떤 소리로 들렸을까? 그에 대한 많은 자료가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나는 첼리스트가 활의 압력과 빠르기 비브라토와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는 포지션등의 기법을 통해 독특한 색체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것이면서도 첼로와 잘 맞는 레퍼토리의 가능성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 극장에 가고 전시회를 관람하며 오페라와 발레를 감상한다. 나는 또한 책을 읽는다. 가령, 나 자신을 인간으로서 성숙케 하고 좀 더 지식이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심리학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우는 것이다. 리게티는 과학자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그의 작곡가로서의 창의력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음반을 듣는 것만으로는 개성있는 예술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음반은 물론 매혹적이며 놓쳐서는 안된다. 하지만 당신의 정신을 좀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 보아라. 당신을 더 풍성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줄 질문을 던져라.
최종결과로서 나는 연습곡을 통해 얻은 것을 엘가 협주곡에 적용시킨다. 연주도중 내가 했던 훈력을 반복한다. 나는 비브라토와 활의 움직임을 예술적 표현과 합치시킨다. 그리하여 엘가라는 종착역에 무사히 안착한다.(나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죽는 날 까지 스케일을 연습하라! 천천히 연습하라. 크고 빠르게 연습하지 마라. 당신의 몸을 제어하라. 성악가처럼 생각하고 복부로부터 나오는 숨을 느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내를 갖고 포기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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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험이 끝나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기분전환 겸 음악시디 두장이랑 심슨 시즌10 DVD를 구입해왔다. 시즌11이 어째서 아직도 매장에 없는건지! retail theraphy는 아니고 딱 기분전환 겸.
시디는 둘다 하인리히 쉬프의 연주인데 비외탕(EMI)이랑 쇼스타코비치(Philips) 첼협이다.
비외탕은 무슨 생각으로 샀는지 모르겠는데 바협 앨범이랑 한참 고민하다가 '그래도 역시 첼로지' 라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을 작은 모험삼아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숨겨진 보물이다! 곡이 너무 매력적이다. 첼로카페에 올릴려고 했는데 망할 네이버 용량제한과 자꾸만 에러가나서 결국 나 혼자만 듣고있다.
사실 쓰여진 곡들은 많은 것 같은데 연주되는건 항상 흐름이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어느 곡이 유행(?)처럼 비슷한 시기에 연주회를 하는 연주자들의 무대에 모두 올려진 경우도 있었고..
이 곡을 듣고 나니까 정말 이런 곡이 연주되는 공연에 가보고싶은 마음이 너무 커진다.
최근 두달간 매일 들었던 곡이 있다면 쇤베르크가 오케스트레이션한 첼로 콘체르토(after G.M.Monn)와 딜리어스의 첼로 콘체르토와 소나타. 쇤베르크의 곡은 원래 하프시코드 협주곡인데 그걸 첼로의 음역으로 표현하려니 솔로이스트에게 엄청난 기교를 요구한다고 한다. 원래 카잘스에게 헌정되었는데 카잘스도 비공개적으로는 연주를 했다고 하는데 연주등의 어려움을 문제삼아 초연은 포이어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좀 의아한건 카잘스가 정말 테크닉의 문제로 콘서트 하기를 사양한걸까? 그냥 궁금하다)
딜리어스의 콘체르토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기분 좋은 햇살아래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 앞에 화려하진 않지만 반짝거려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자연이 펼쳐진다. 음.. 주변에 있는 자연? 안개, 나무, 낮은 구릉, 호수, 잔디밭, 그 아래 내가 밟고있는 말랑말랑한 흙 이런거...
비외탕이 그 시대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에 첼로 콘체르토 1번에서도 연주자로서의 면모가 확실히 보인다는데 실제로 1번을 듣다보니 바이올린 소리에 가까운 하이포지션도 마구 나타나고 카덴짜는 '에엥?' 이다. 이렇게 연주가 가능한거야? 하게되는 부분도 있고... 비외탕할아범 스스로가 가능하니 연주자에게도 마구 요구한게 아닐까 싶다-_-; 좀 미안하지만 그건 솔로이스트 몫이고 듣는 나는 너무 즐겁다. 너무 매력적이다 이 곡!
어째서 연주 목록에 저 곡들이 포함되지 않는걸까? 대중에게 들려주기에는 매력과 가치가 부족하여 연주를 하기 싫은걸까 아니면 연주를 못 하는 걸까? 약 삼개월동안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시디들 중에서 첼로로 연주된 곡들을 기준 없이 그냥 눈에 띄는대로 모두 다 들었다. 두리뭉실하게 느끼는건 존재자채도 알 수 없이 뭍혀버린 곡들에 비하면 레코딩이라도 된 것에 감사해야하지만 시디안에만 담겨져있기에는 아름다운 곡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다. 그 곡들이 좀 더 많이 연주 되면 좋겠다. 그 가치를 찾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솔로이스트들에 의해 인쇄된 종이물에 불과한 음표들이 날개를 달아 노래하며 공연장 안을 가득 메우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기쁘지 않은가?
까먹을까봐 인터넷에서 찾은 비외탕 첼협 설명들도 함께 첨부!
당대의 유수한 바이올린 연주의 대가이며 작곡가이던 비외탕(1820 - 1881)은 1973년 뇌졸증으로 오른쪽 팔의 마비 증세가 오기까지는 바이올린 작품만을 썼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방향을 선회하여 첼로와 비올라 등 다른 현악기들을 위한 작품을 쓰며 2개의 첼로 협주곡을 남긴다. 그중에 첼로 협주곡 1번은 1876년 2월에 완성되어 첼리스트 Joseph Servais가 자신의 집에 몇몇 인사들을 초대하여 비공식적으로 초연되었다. 그런데 몇일 후에 익명의 비평가가 " 첼로 비루투오조 들은 자신의 레퍼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이 위대한 작곡가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라고 파리의 Gazette 음악지에 투고를 하였다고 한다. 하이든이나 드보르작의 작품만큼 자주 접하게 되는 곡은 아니나 놓칠 수 없는 첼로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전술한 작곡가들의 작품처럼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배경과 첼로의 질팍함은 모자라는 듯 하지만 독주의 화려함으로 충분히 보충될 수 있으며 특히 연주 기교에서 우러 나오는 현란함은 오케스트라의 현과 동 떨어짐 없이 어울려 첼로의 또 다른 맛을 충분히 즐기게 만든다. 익명의 비평가가 한 말이 절대로 빈말이 아닌 협주곡이다.
비외탕이 첼로 협주곡을 두 곡이나 작곡했지만, 모두 잊혀졌다. 동시대의 비르투오조였던 '세르베'의 연주는 그에게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윌리엄 3세'(William Ⅲ)에게, 첼리스트 '조제프 세르베(Joseph Servais)'에게 헌정된 두 곡의 첼로 협주곡들은 비외탕의 협주곡들이 갖고 있던 장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기교적이고 섬세한 독주 악기와 파워풀한 오케스트레이션, 느린 악장의 우아함. A 단조의 첼로 협주곡 1번은 1876년 1월에 작곡되어졌고, 그 해 10월 암스테르담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와, 첼리스트 '요제프 홀만'(Joseph Holmann)에 의해 초연 되었다. 작곡가 비외탕에게 있어서 1870년대는 그의 인생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맞는 시기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왼쪽 마비증상으로 인해 브뤼셀 음악원에서의 교수활동을 포기해야했기 때문이다. 1873년 10월 13일, 비외탕은 왼쪽 몸 전체가 마비되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머지 반쪽의 부분 또한 언제 마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음악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작곡을 시작했으며, 두 개의 첼로 협주곡은 그러한 작업의 산물이다.
그가 절망에서 희망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때인, 1879년 또 한차례의 마비증상이 그를 덮쳐왔다. 비외탕은 더 이상 바이올리니스트로 혹은 지휘자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 연주가로서 공식적인 활동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는 이제 모든 걸 예감하고서, 가족과 함께 알제리의 요양소로 떠났다.
1880년 10월 19일 그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B 단조)의 작곡을 마친 그는 "상상해 보세요, 나는 누구나 아름답다고 하는 첼로 협주곡을 이제 막 끝냈습니다. 그것은 세르베에게 헌정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 해인 1881년 6월 6일에 숨을 거두었다.






